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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문턱을 넘는 일이 생각보다 더 사람을 지치게 하더라

형사 고소장을 쓰기 위해 마주한 하얀 종이의 무게

사실 살면서 경찰서 문턱을 밟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드라마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눈물 콧물 흘리며 고소장을 제출하고 바로 수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육하원칙에 맞춰 사건을 정리하는데, 내가 겪은 불쾌한 사생활 침해와 스토킹 행위들이 글로 옮겨지니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기웃거려 볼까도 했다. 그런데 비용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상담료만 30분당 10만 원에서 20만 원을 부르는 곳이 태반이었고, 실제 사건 수임료는 수백만 원 단위로 뛰었다. 그냥 내가 써보자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고 관련 법령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그때는 몰랐다.

공무원 직무 유기와 담당 수사관의 무관심 사이

결국 경찰서 민원실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니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담당 수사관이 배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바쁘다는 말만 반복되는데, 괜히 내가 귀찮게 구는 건가 싶어 주눅이 들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공무원 직무 유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사건이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억울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건 번호 하나 부여받는 것도 큰일인데, 그들에게는 매일 쌓이는 수많은 서류 뭉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형사공탁제도를 활용해 합의를 종용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전략적인 대응보다는 그냥 이 지겨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닳아가는 마음의 감정

시간이 지나면서 조사가 진행되고 대질 심문 비슷한 상황이 닥치기도 했다. 그때 상대방이 내뱉는 말들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뻔뻔하게 자신은 몰랐다거나, 오해라는 식으로 일관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 법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피해자의 감정을 세세하게 보듬어주지는 못하는 구조인가 싶었다. 춘천지법이나 강릉지원 같은 곳에서 나오는 판결 기사들을 보면 가해자가 감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가 꽤 많더라. 그런 기사들을 찾아볼 때마다 내 사건의 결말도 비슷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합의금이라는 이름의 씁쓸한 마침표

결국 합의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상대방 측에서는 1,000만 원 내외의 금액을 제시하며 형사공탁을 운운했다. 내 인적 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법원에 공탁금을 넣어버리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더 까다로워진다는 걸 그들도 아는 모양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우자니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고, 그렇다고 합의해주자니 내가 겪은 지난 몇 달간의 스트레스가 억울해서 잠이 안 왔다. 정관 변호사니 뭐니 하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쓴 칼럼도 읽어봤지만,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묘한 뒤끝

결과적으로 나는 합의를 선택했다. 더 이상 일상을 갉아먹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형사 사건이라는 게 사실 누구 하나 완벽하게 이기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고생한 만큼 상대방이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얻은 금전적 보상이 내 무너진 정신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법적 절차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억울해해야 하는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지금도 때때로 예기치 못한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곤 한다. 이게 과연 다 끝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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