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 한 장으로 해결될 줄 알았지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거래처 미수금 문제 때문에 속을 꽤나 썩였다. 처음에는 좋게좋게 말하면 알아서 주겠거니 싶었는데, 이게 한 달 두 달 넘어가니까 사람이 참 예민해지더라. 결국 고민하다가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밟는 대신 내용증명부터 한번 보내보기로 했다. 인터넷 찾아보니 다들 그거 하나면 상대방이 겁먹고 돈을 입금한다길래 말이다. 우체국 가서 등기 보내는 그 순간까지만 해도 뭐라도 시작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다. 비용이야 대략 몇 천 원 수준이었으니 부담도 없었고.
인천에 있다는 그 사람은 연락조차 안 받고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분명 인천 쪽 주소지로 보냈는데, 결과는 ‘폐문부재’. 몇 번을 다시 보내봐도 똑같았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진짜 그곳에 살긴 하는 건지, 아니면 사업장만 거기로 해두고 도망간 건지 알 길이 없더라. 기업정보조회 같은 걸 해봐도 별다른 성과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지. 사실 애초에 큰 금액은 아니었다. 300만 원 정도 되는 상사채권이었는데, 이걸 받겠다고 수임료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그동안 들어간 시간과 감정 소모가 너무 아까워서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채권 시세라는 게 참 허망하더라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부실채권을 전문으로 매입하는 곳이 있나 찾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채권은 거의 종잇조각 취급을 받더라. 채권 시세가 원금의 몇 프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허탈함이란.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받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나중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상자산이나 숨은 재산이라도 조회해 볼 수 있는지 기웃거려봤다. 신용회복위원회나 한국자산관리공사 같은 곳에서 요즘은 가상자산까지 다 뒤져본다던데, 개인 자격으로 뭘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시스템이더라. 통장 압류라도 하려면 판결문이 있어야 한다는데, 소송까지 가기엔 내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
나중에 우연히 대부업체 관련 기사를 보다가 채무자 대리인 제도라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반대 입장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채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겐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히려 돈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인 내가 더 벼랑 끝에 몰린 느낌이랄까. 불법 사금융 광고가 아직도 골목길에 붙어있는 걸 보면 세상이 참 흉흉하다 싶기도 하고. 굳이 신분증 꺼내며 신용정보 조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상담 시스템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나처럼 애매하게 묶인 돈을 받아내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법적인 절차라는 두꺼운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입금 알림을 확인하지만
결국 몇 달 지나고 나서는 그냥 손을 놓았다. 통장 압류를 해보려고 해도 비용이 더 들 것 같고, 법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어쩌다 한 번씩 잊을 만하면 혹시나 입금되지 않았을까 싶어 계좌를 열어보곤 하는데, 여전히 잔액은 그대로다. 돈을 못 받아서 힘든 건 둘째치고, 누군가에게 내 돈을 떼였다는 그 찝찝한 기분이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지워지질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거래할 때 더 깐깐하게 굴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제 와서 뭘 어떻게 더 할 수 있을지 지금도 딱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이대로 영영 못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도 싫은 그런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