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전 반경 5미터라는 애매한 기준
며칠 전 퇴근길에 우리 집 앞 빌라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평소보다 차가 더 빽빽하게 주차된 걸 보고 한숨부터 나왔다. 그냥 평범한 주택가 골목인데, 유독 우리 집 근처만 주차난이 심하다. 문제는 골목 모퉁이에 있는 빨간 소화전이다. 이 주변은 당연히 비워둬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다들 일단 대놓고 보는 것 같다. 어제는 그 소화전 바로 앞에 웬 승용차가 딱 붙어서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 어디서 봤는데 소화전 반경 5미터 이내면 과태료가 8만 원인가 9만 원이라고 들었다. 정확한 금액은 사실 8만 원인지 9만 원인지 헷갈리지만, 하여튼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건 확실하다. 굳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기에 차를 세워야 하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주차 공간이 없어서 빙빙 도는 그 막막한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이 참 복잡했다.
강제처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문득 소방기본법 어쩌고 하는 기사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소방차 통행을 방해하면 강제처분이 가능하다는 거다. 실제로 소방차가 출동하다가 길을 막고 있는 차량을 밀어버리는 영상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아, 속 시원하다’ 싶었는데, 막상 내 집 앞에 세워진 차를 보니까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든다. 저 차주도 그냥 오늘 하루가 고단해서, 정말 세울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저기에 댄 건 아닐까. 차를 밀어버릴 권한이 법적으로 있다 한들, 막상 그게 내 차라면, 혹은 내 이웃의 차라면 그게 과연 그냥 ‘법 집행’으로만 끝날 일인가 싶기도 하고. 공무원징계변호사 같은 단어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걸 보면, 결국 모든 일은 어떤 식으로든 분쟁으로 번지기 마련이라 더 조심스러워진다. 법이라는 게 참 매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강제 수단 없이는 정말 큰 사고가 났을 때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씁쓸하다.
옥천소방서 전화번호를 저장할까 고민했던 밤
괜히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건 아닌지, 아니면 안전을 위해 신고를 하는 게 맞는 건지 한참을 차 안에서 고민했다. 옥천소방서 재난대응과인가 하는 곳에서 소방차 전용구역 관련해서 문의하면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다. 그냥 거기 전화해서 물어보면 답이 나올까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 하나 신고한다고 주차난이 해결될 리도 없고, 괜히 이웃 간에 얼굴 붉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소방기본법 제21조의 2라던가, 이런 법 조항들이 내 삶과는 먼 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치니 참 무겁게 다가온다. 결국 그 차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사라졌고, 다행히 어젯밤에 불이 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우연에 기대를 거는 게 과연 안전한 삶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여름철이면 더 신경 쓰이는 응급 상황 대응
가끔 지역 소식지 같은 걸 보면 여름철에는 심폐소생술 교육이나 익수 사고 대응 교육 같은 걸 한다고 한다. 충주소방서에서 그런 걸 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나도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배워봐야지 싶다가도 막상 그 시간이 되면 귀찮아서 미루게 된다. 불법 주차나 소방관련법령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사실 이런 기본적인 응급처치법을 익히는 게 더 중요할 텐데 말이다. 거창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기후위기 대응 같은 거창한 법안들보다, 당장 내 집 앞 소화전이 막혀있는지 확인하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왜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오늘 퇴근할 때는 또 차가 어디에 세워져 있을지 괜히 걱정부터 앞선다.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이 예전보다 더 좁게 느껴지는 건 단지 기분 탓일까.
결국은 서로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딱히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치기도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소방법령이니 뭐니 따져봐야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 다들 자기 편한 대로 살아가게 마련인 것 같다. 나도 운전하면서 급할 때는 가끔 불법 주정차 구역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할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소화전만큼은 비워두는 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게 사실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게 너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한다.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그 소화전 자리가 비어있길 바랄 뿐이다. 8만 원짜리 딱지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음 편하게 지나가고 싶어서. 법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매일 골목길에서 느낀다.

저도 운전할 때 갑자기 차선이 불확실해지면 불안할 때가 많아요. 소화전처럼 꼭 필요한 상황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