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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고소장을 내러 가던 날의 묘한 기분

경찰서 문턱이 이렇게 높았나 싶었다

며칠 전 경찰서에 다녀왔다. 살면서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막상 고소장을 들고 민원실 앞에 서니 손이 다 떨렸다. 드라마에서 보면 검사나 형사들이 아주 날카롭게 사건을 파헤치고,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하곤 하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일단 민원실 입구부터가 무슨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내가 들고 간 종이 몇 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사실 이 서류를 작성하는 데만 꼬박 3일이 걸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고소장 양식을 이것저것 내려받아 보긴 했는데, 막상 내 상황에 맞춰 내용을 채우려니 뭘 어디까지 적어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왔다. 결국 법률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 싶어서 변호사 사무실을 기웃거려 봤는데, 착수금 이야기를 듣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수백만 원 단위가 오가는 걸 보니, 이게 정당한 절차인지 아니면 또 다른 늪에 빠지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엉성하게 적어간 서류와 마주하다

결국 그냥 내가 직접 작성했다. 변호사 상담을 하면 좋겠지만, 당장 그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 사건이 그렇게 거창한 건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쌍방폭행 벌금 문제나 지인 사이의 감정싸움 같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는데, 이걸 법률 용어로 예쁘게 포장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경찰관 앞에서 서류를 내미는데, 담당 수사관이 서류를 대충 훑어보더니 원산지 표시니 뭐니 하는 서류상의 작은 틈을 지적하는데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사실 나도 안다. 내가 쓴 고소장이 얼마나 투박한지. 하지만 억울한 마음만은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사관은 사무적으로만 대했다. 그게 제일 속상했다. 나는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겐 수천 건 중 하나인 사건 번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말이다.

형사전문 타이틀 뒤에 숨겨진 현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형사전문 변호사 광고를 멍하니 쳐다봤다. ‘피의사실공표죄’니 ‘특수상해죄’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예전에 뉴스에서 본 김관영 의원이나 다른 정치인들의 사법 공방을 볼 때는 그저 멀리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연루되어 보니 이건 그냥 머리 터지는 싸움이더라. 변호사를 선임한 지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사 절차 중에 사건 당사자가 열람할 수 있는 수사 자료들도 꽤 많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전쟁이라고 했다. 누구는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달려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소 취하 합의를 운운하며 뒤에서 딴짓을 하고. 이게 정말 사법 정의가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목소리 크고 변호사 잘 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지 도통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일까

벌써 사건이 접수된 지 2주가 지났다. 아무런 연락이 없다. 처음엔 휴대폰 진동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제는 그냥 무뎌진 것 같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에서 본 20대 중감금치상 판결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결국 법은 마지막에 누가 웃느냐를 결정하는 냉정한 도구라는 거다. 감정적으로 억울하다고 호소해봤자 법전은 그저 정해진 문구대로만 움직인다. 변호사 착수금만큼의 효용을 기대하고 돈을 썼다 치더라도, 과연 결과가 내 예상대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내가 그때 그 순간에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아니면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만 남는다. 오늘도 법률 포털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며 쓸데없는 검색어만 계속 치고 있다. 원산지 표시가 뭔 상관인가, 내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 있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고소장을 제출하고 돌아오던 그날, 경찰서 앞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남자가 생각난다. 그 사람도 나처럼 굳은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꽉 쥐고 있었다.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했을까. 이게 끝나면 정말 일상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벌금을 내거나, 아니면 무혐의 처분이 나거나 하면서 흐지부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 생긴 생채기는 단순히 서류 몇 장으로 봉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형사사건이라는 게 참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냥 다 잊고 싶다가도, 문득문득 그때의 억울함이 떠오르면 또다시 고소장 작성법을 검색하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다. 내일은 좀 다른 결과가 있을까, 아니면 그냥 똑같은 일상이 이어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형사고소장을 내러 가던 날의 묘한 기분”에 대한 2개의 생각

  1. 수사 자료 열람 과정이 전쟁처럼 느껴지시는 건, 제가 비슷한 경험 때문에 그런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예상치 못한 복잡함에 당황하는 마음이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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