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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증명 한 장 쓰려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만 밟고 돌아온 날

며칠 전, 윗집과 층간소음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내용증명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증명 양식들을 이리저리 뒤져보는데, 이게 생각보다 문장이 너무 딱딱하고 위압적이라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법을 잘 모르는 내가 함부로 작성했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집합건물법과 경범죄 처벌법 사이의 모호함

결국 답답한 마음에 동네 근처 법률 사무소를 찾아갔다. 상담비는 대략 10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였는데, 막상 상담실에 앉으니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너무 사소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상담해주시는 분은 층간소음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나 ‘환경분쟁 조정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하셨지만, 현실적으로는 ‘경범죄 처벌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층간소음 자체가 범죄로 처벌받기까지는 꽤 복잡한 입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괜히 경찰서 들락거리고 법적 절차 밟다가 더 스트레스만 받는 상황이 그려지니 벌써 한숨이 나왔다.

세차로 지워지면 경범죄라는 씁쓸한 판례

상담 도중 흥미롭지만 기운 빠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차에 커피를 던졌는데, 이게 페인트나 분뇨처럼 제거가 어려운 물질이 아니라 세차로 쉽게 지워지는 경우라면 재물손괴가 아니라 경범죄 처벌법 정도에 그친다는 판례였다. 내 층간소음 문제도 비슷했다. 상대방이 작정하고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법적으로는 그저 ‘참고 살아야 하는 범위’ 어딘가에 머물게 된다. 10만 원의 상담비를 내고 얻은 결론이 ‘법대로 하려면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들지만, 막상 이겨도 남는 건 허탈함뿐일 수 있다’는 사실이라니,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역 앞 관악산 근처에서 산림보호 캠페인 현수막을 봤다. 거기에도 경범죄 처벌법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자연을 훼손해도 10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데, 사람 사이의 스트레스는 법이 아무리 촘촘해도 10만 원으로 치유될 리가 없지 않나.

내용증명 작성보다 더 큰 현실의 벽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결국 나는 내용증명을 쓰지 않았다. 법적인 용어를 섞어가며 문장을 구성하다 보니, 내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이 일을 벌이는 건지,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귀마개를 사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체상금이나 강제이행금 같은 단어들이 서류 위에서 빙빙 도는데, 현실은 그냥 내일 아침에도 윗집 발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하는 것뿐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층간소음의 미묘함

지나가다 보면 경찰서 지구대에서 우수 사례로 포상받았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막상 우리 집 문제로 그곳에 가기엔 문턱이 너무 높다. 범죄경력조회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미싱 피해 조심하라는 문자가 오고, 세상은 점점 법과 규정으로 촘촘해지는데 정작 내가 겪는 불편함은 법전 어디에도 명확한 해답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법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층간소음 문제는 내가 이사 나가기 전까지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분간은 그냥 참고 살아보겠지만, 이 찜찜한 기분은 언제쯤 사라질지 모르겠다. 오늘도 윗집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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