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원 근처를 서성거릴 줄은 몰랐다
살면서 서초동 법원 근처를 서성거릴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처음 문제가 터졌을 때는 그냥 잘 설명하면 다 풀릴 줄 알았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을 때도, 왠지 내가 억울한 부분을 명확히 말하면 수사관도 ‘아, 그렇군요’ 하고 이해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더라. 법무법인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던 날, 변호사가 내민 견적서를 보고 머리가 멍해졌다. 항소심 변호사 비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사건이 1심에서 2심으로 넘어간다는 건 단순히 재판을 한 번 더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통장 잔고와 일상 전체가 흔들린다는 뜻이었다.
서류 한 장이 가지는 무게에 대하여
탄원서 작성 방법을 인터넷에서 뒤져보다가 밤을 샜다. 양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갈 내 진심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겨야 할지 막막했다. 판사님이 읽을지도 모르는 그 종이 한 장에 내 인생의 궤적을 욱여넣는 기분이 묘했다. 주변에서는 ‘직권남용이나 공무상비밀누설 같은 죄목은 다투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고소장 양식을 펼쳐놓고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쓴 탄원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읽을 때마다 말투가 너무 감정적인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변명처럼 들리는 건 아닌지 끝없이 고민했다.
1심 판결을 받아들고 나서의 멍한 기분
1심 결과가 나왔을 때의 그 공허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재판부가 내 변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판결문을 통해 확인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논리와는 너무 달랐다. ‘이게 왜 유죄인가’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법리는 내 억울함과는 다른 차원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나 다른 형사 사건들을 검색하면서 항소심에서 결과를 뒤집은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매일같이 찾아봤다. 물론 사례는 있었지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법원 대기실에서 대기하며 시계를 봤을 때, 1시간이 1년처럼 느껴지던 그 정적도 참 괴로웠다.
합의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현실
형사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은 더 참담했다. 돈으로 내 죄를 씻는다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 하기 싫었지만,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1심에서 끝내지 못하고 항소심까지 온 상황에서, 상대방과 금액을 조율하는 과정은 비즈니스 같으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서로를 향한 날 선 감정이 깔려 있었다. 금액을 제시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은 휴대폰 알림만 울려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변호사 사무실 실장님과 통화하면서 ‘지금 제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일까요?’라는 질문을 몇 번이나 던졌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확답은 주지 않았다. 그냥 ‘지켜봐야죠’라는 말이 전부였다.
결국 시간과 돈의 싸움이라는 생각
지금 돌이켜보면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소요된 비용과 시간, 그리고 그간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합치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가끔 회의감이 든다. 법무법인 사무실을 드나들 때마다 보던 그 건물들, 그리고 거기서 마주치던 수많은 사람들도 다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겠지. 대단한 결론을 얻으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냥 항소심 재판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기록해두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도 서초동에서 오는 우편물 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이 긴 과정이 끝날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탄원서의 각 문장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것 같아요. 특히 ‘내 인생의 궤적’이라는 표현이 와닿았어요.
탄원서 작성할 때, 제 이야기가 판사님께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느껴졌어요. 특히 양식에 진심을 담는 방법이 더 고민스러웠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