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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문턱을 넘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인 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다. 살면서 그런 전화를 받을 일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휴대폰에 찍힌 낯선 번호를 보고 무심코 받았는데, 상대방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보다는 일단 언제까지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통보가 먼저였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서 당황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경찰대 출신 변호사를 찾아라, 고소장을 어떻게 써라 하는 정보가 쏟아졌는데, 정작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 딱 맞는 정보는 없었다.

긴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든 생각

약속된 날짜에 경찰서를 찾아갔다. 서울 시내의 한 경찰서였는데, 건물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로비를 지나 조사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요즘은 택배 도난이나 간단한 민원도 온라인으로 접수한다지만, 형사 사건으로 불려 들어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방문증을 목에 걸 때까지만 해도 손끝이 조금 떨렸다. 사실 변호사를 선임할지 말지 고민도 많이 했다. 수임료가 보통 수백만 원에서 시작하는데, 상담비만 해도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니까 일단 혼자 가보고 결정하자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객기였는지, 아니면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이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조사실에 앉으니 담당 수사관이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건조했다. 내가 예상했던 드라마 속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보다는, 그냥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 업무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질문이 묘했다. “이날 이 시간에 어디에 있었나요?” 같은 평범한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의도가 뭔지 파악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손해를 볼 것 같고, 거짓말을 하기엔 덜컥 겁이 났다. 옆에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면 중간에 끊어주거나 조언이라도 해줬을 텐데, 혼자 앉아 있으니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처벌불원서와 합의의 사이에서

조사를 받다가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복도 자판기 커피가 500원이었는데 그걸 뽑아 마시면서 생각했다. 상대방이 고소를 취하해주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처벌불원서를 받아오면 기소유예나 약식기소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막상 상대방과 연락을 닿게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고문이었다. 내가 직접 연락하면 2차 가해니 뭐니 해서 더 상황이 꼬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때가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불송치 결정 이후의 찜찜함

결국 수사는 몇 달이 걸렸다. 처음 한 달은 정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무뎌졌다. 나중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불송치 결정이 났다. 증거 불충분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는데, 솔직히 기쁘기보다는 그냥 허탈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듣는 게 아니라 그냥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는 느낌이랄까.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봤는데, 요즘은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해서 다시 뒤집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경찰 수사권이 강화되니 마니 하는 뉴스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경찰서에 다녀온 뒤의 일상

사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은 우편함에 경찰서에서 온 서류가 없는지 습관적으로 확인했다. 200만 원 정도 들여서 변호사 상담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고, 반대로 아무런 추가 대응 없이 잘 넘어간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법이라는 게 참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 번 얽히면 사람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조사를 받던 날 수사관이 물어보던 질문들이 가끔 밤에 생각나는데, 다시 돌아가도 내가 그때 했던 대답들보다 더 잘할 자신은 없다. 그냥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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